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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은 신앙 고백입니다
Guideposts 2026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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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은 신앙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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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가슴속에는 일상을 지피며 은근히 타오르는 작은 불씨가 있다. 오래도록 품어 왔으나 아직 못다 이룬 꿈, ‘언젠가’를 기약하며 간직해 온 간절한 소망의 불씨 말이다. 그렇다. 불씨를 간직한 자는 곧 꿈꾸는 자다. 가슴속에 간직된 소망의 불씨를 타오르게 하는 연료는 다름 아닌 열정이다. 오십에 접어들며 붓을 들어, 마침내 화가의 꿈을 이룬 김봉희 작가에게는 바로 그 열정의 연료가 있었다. 그는 어떤 이유도 핑계 삼지 않고, 오로지 ‘그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팔순을 향하는 지금도 그는 매일 ‘습관’처럼 캔버스 앞에 선다. ‘그리는 사람’으로서 예술과 신앙의 점을 잇기 위해서다. 오늘도 따스한 시선으로 화폭 가득 하나님의 형상을 채워 가며 신앙을 고백하는 김봉희 작가를 만나 보았다.
인생의 후반 레이스를 ‘그림’으로 채워 가고 계십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이란 무엇인가요?
그림은 제가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항상 제 곁에 있던 대상이에요. 제 형제들이나 친척 중에 그림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없는데 유독 저만 그래요. 어린 시절에는 그림을 볼 기회도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잘 모르는데도 항상 그림을 그렸어요.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요. 제가 마당에 할머니를 모델로 앉히고 그림을 그린 거예요. 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생 말에 따르면 제가 풍경화를 그린다고 동생을 데리고 야외에 나가 늘 옆에 있어 달라고 했대요. 어렴풋하게 기억은 나는데 동생의 말이 자주 그랬다고 해요. 게다가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좋아해서 상자들을 모아다가 집을 짓기도 하고, 바느질과 재봉틀로 무얼 만들기도 했죠. 또 집에 걸린 달력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모자이크로 재구성했는데 제가 봐도 괜찮아서 한 해 동안 두고 봤던 기억이 있어요. 과학자이신 아버지의 일본 책들은 컬러 인쇄가 너무 잘 나와 찢어서 작품을 만드는 데 쓰곤 했지요. 훗날 아버지 책장을 정리하느라 책을 들춰 보았는데 너덜너덜 뜯긴 흔적들이 보이더라고요. 제가 뜯은 종이들을 아버지가 다시 붙여 놓으셨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됐어요. 어린 제가 마음대로 어떤 일을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즐겨 하는 것을 존중해 주시고 지켜봐 주셨기에 그림이 늘 제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찍이 재능을 발견하셨지만 ‘미술’이 아닌 ‘기독교 교육’의 길을 택하셨고, 또 수십 년을 한 교회의 사모로 살아오셨어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림이 늘 제 곁에 있었고 또 좋아했지만, 미술을 업으로 삼는 것은 일찍이 단념했어요. 제가 자라는 동안 부모님은 저에게 어떤 일에도 야단이나 꾸중을 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니가 언젠가 그림을 업으로 삼으면 고생스러울 거라며 걱정스러운 내색을 보이신 적이 있거든요. 그게 제 마음에 깊이 남았나 봐요. 그래서 그림이 아닌 다른 전공을 택하게 된 거죠. 고교 시절에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참 깊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교회 학생부 주보를 만들었는데요, 토요일마다 예배당에 혼자 남아 철야를 하며 작업을 했죠. 주보에 그림을 그려 등사기로 인쇄를 하면 항상 밤 12시가 넘었어요.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을 때라 집에 갈 수가 없으니 밤새 교회에 있어야만 했죠. 아무도 없는 교회당에서 무얼 하겠어요. 그저 기도밖에 할 것이 없었어요. 강대상에 희미한 불을 덩그러니 밝힌 채 깜깜한 뒷자리에 앉아 기도한 거예요. 한번은 태풍이 와서 바람이 무척 심하게 불던 날에도 교회에 혼자 있었어요. 비가 들이치고 천둥 번개가 치는데도 전혀 무섭지 않더라고요. 또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에는 새하얀 도화지처럼 펼쳐진 눈길 위에 나 홀로 발자국을 찍으며 집으로 돌아갔죠. 여름에는 모기를 피하려고 담요를 덮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려고 담요를 덮고, 그렇게 1년 내내 교회에서 담요를 덮고 지냈어요. 그 외에도 교회 포스터 그리기, 강대상 장식, 꽃꽂이, 교회 책자 만들기 등을 맡아서 했죠. 그렇게 3년을 지내면서 늘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게 되었어요. 아마도 하나님이 사모의 길로 이끌려고 훈련하셨던가 봐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제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설정된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모의 길로 삶의 여정이 이어지게 된 것 같고요.
청소년기부터 남다른 신앙 훈련을 받으신 셈이네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집 앞의 산을 넘어 청계산 기도원을 참 많이 다녔어요. 허술한 가건물에서 지내며 기도원 건물 짓는 일까지 도왔지요. 버스를 타고 내려 걸어서 기도원에 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는데, 그 근처에 산이 있었어요. 그 산만 넘으면 기도원이 있을 것 같아 혼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산꼭대기에 오르면 또 다른 산이 앞에 있고, 또 산꼭대기에 오르면 기도원은 보이지 않고 더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아침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저녁 어두워질 무렵에 기도원에 도착했어요. 산을 하나 넘을 때마다 항상 내 앞의 산이 더 크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지금 내 앞에 있는 산이 제일 커 보인다. 내 눈앞에 있는 현재 문제가 제일 커 보인다.’ 그 산을 넘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삶을 살게 되었어요. 늘 기도원을 오가며 기도의 기쁨을 맛보던 습관이 저를 만든 거예요. 기도하는 사람으로요. 누가 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이제는 내 몸에 밴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매일 성경을 보며 묵상하면서 밥을 먹어요. 육의 양식을 먹으면서 영의 양식인 성경을 안 보면 한쪽이 굶주린 것 같아서 배부르지 않고 공허해져요. 이제는 오랜 습관이 되었어요. 제 스마트폰을 열면 바로 성경이 나와 눈이 저절로 성경을 향하게 되죠. 성경을 안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단단한 신앙의 원뿌리가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윗세대로부터 흘러내려 온 신앙의 유산 덕분 같아요. 저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셨어요. 어머니가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면 가족 중에 가장 잠귀 밝은 제가 대문을 열어 드렸죠. 외가의 선조분들이 최초의 미국 선교사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영접하셨는데요. 세 분이 장로가 되어 각각 교회를 세우시고, 그 자손들이 목사가 되었죠. 그중에 YWCA의 초대회장을 지내신 분도 있고요. 그 신앙의 수혜를 제가 받은 거겠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나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사모로 살아오신 세월 동안에는 전혀 붓을 들지 못하셨는데요. 잊고 지내던 그림을 다시 붙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결혼 이후로는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했어요. 시간이 전혀 없기도 했고, 현재에 집중하는 제 성격 때문이기도 했죠. 목회자 남편에게 마사지를 해 주려고 한의학 책을 사다가 공부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 옷을 손수 지어 주거나 수선해 주기도 하는 등 내조에만 집중했어요.(웃음) 그러다가 성경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교인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죠.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저희 집에서 성경을 가르쳤어요.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고 대화 나누면서 공부를 하니 구성원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모임을 이끄는 저 자신이 은혜를 받으며 하니까 저도 성장하고 구성원들도 성장했죠. 그렇다 보니 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자녀들에게도 성경을 직접 가르쳤어요. 학업 공부도 제가 힘껏 돌봤고요.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학교에서 학생 상담하는 일도 했어요. 수년의 세월을 그렇게 교육에 힘쓰다가 자녀들이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니까 가슴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저를 돌보고 싶었어요. ‘이제 내가 나를 돌봐 주자’ ‘내가 나를 사랑하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어요. 그림이 떠오르더라고요. 수차례 거듭거듭 칠하며 내 모든 삶과 생각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유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동안 주로 ‘인물’ 위주의 그림을 그려 오셨더라고요. 수많은 회화 장르 중에 특별히 ‘인물’을 다루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가장 마지막에 지으신 것이 바로 사람이잖아요.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 중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죠. 저는 하나님 작품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니까요. 각 개인 안에 숨어 있는 긍정적인 면모, 그것을 그리고 싶은 거죠. 자신을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 놓고 보면 하나님의 긍정적 은혜가 전달되는 것 같아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초상화와 인물화의 특징이며 기쁨입니다. 인물화를 그리면 그 배경으로 정물, 풍경 등을 함께 그릴 수 있어서 좋아요.
작가님의 예술적 감성은 신앙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며 승화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서 말씀드렸듯 습관적인 기도와 묵상을 통해 감성과 신앙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특정한 시간을 정하지 않더라도 밥 먹으며 성경을 읽고, 또 하늘 올려다보며 기도하고…. 이처럼 모든 일상의 순간 속에서 저의 감성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게 되지 않나 싶어요.
저는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좋아해요. 힘들고 안 좋았던 일도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인도해 주셨더라고요. 고난으로 인해 성장하고 발전하며,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었죠. 또 하나 좋아하는 찬송은 ‘나는 선한 주님을 믿네’예요. 밤에 자리에 누우면 하나님이 날 쳐다보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많이 흘려요. “저 높은 곳에서 나를 항상 바라보시는 주님. 나의 갈 길 막막하여도 나는 선한 주님을 믿네.” 그래서 매일 밤 은혜 속에서 잠을 자요. 만약 사람들이 저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온전히 주님과 함께하는 그 습관이 몸에 밴 덕분일 거예요. 그래서 매 순간을 습관처럼 신앙 고백하듯 살려고 노력합니다.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도 늘 ‘기도’가 동반되겠군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그림들 전부가 신앙 고백이자 삶의 고백이겠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요. 그 속에 제가 다 담긴다고 볼 수 있어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한번은 우리 손자가 가정 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적이 있어요. 아이가 크게 입을 벌려 하품하는 순간을 포착해 사진을 찍어 두었거든요. 그 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희한하게도 그림을 그리는 내내 하품이 나는 거예요. 그때 번뜩 깨달았어요. ‘그림이 나를 닮고, 내가 그림을 닮아 가는구나.’
지극한 습관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신 까닭인지 작품들이 하나같이 따뜻하고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그 온기가 프랑스 ‘르 살롱’ 전시에서도 전해졌다고요. 세 차례에 걸쳐 선보인 각각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그림을 시작한 뒤 그룹전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전시에 관람 오신 어느 분이 프랑스 ‘르 살롱’전에 출품해 보라고 권유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는데, 워낙 강하게 권유하셔서 2014년에 출품을 했죠. 프랑스가 국가적으로 운영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사전 심사를 거쳐 통과되어야만 그림을 선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심사에 통과되었죠. 제 아들 내외와 손자가 함께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그림인데요. 전시장에 가 보니 제 그림 앞에 사람들이 다 서 있더라고요. 한마음으로 한 방향을 보며 동행하는 ‘가족’에 대한 메시지가 녹아 있는 작품인데, 그 메시지가 다양한 국적의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된 모양이에요. 2년 뒤, 두 번째로 출품한 작품에는 피아노 연주 장면이 담겨 있어요. 한 사람은 연주를 하고, 한 사람은 악보를 넘겨 주며 돕는 장면이죠. 이 작품을 전시한 이후 프랑스어로 메일이 자꾸 오더라고요. 판매나 계약을 제안하는 화상들의 메일이었죠. 지금이야 손쉽게 번역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당시에는 까다로웠잖아요. 그래서 어떤 문의에도 응하지 않았어요. 드러내며 활동하는 것보다 내 실력을 갈고닦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웃음) 2024년에는 세브란스 병원의 의뢰를 받아 그린 ‘제중원을 꿈꾸다’(2023년작)를 출품했죠. 알렌 선교사가 고종을 알현하고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 설립을 윤허받는 장면이에요. 해외에 한국의 역사를 소개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여서 감사했어요.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니 뛰어난 재능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6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개인전을 여셨잖아요. 첫 개인전이라서 더욱 감격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 전시도 관계자분의 강한 권유로 하게 되었는데요.(웃음) 예술의전당 관계자분이 제 작품을 출품했는데 심사에서 통과되었다며 전시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라며 안 하겠다고 사양하니까 그분이 무척 의아해했어요.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웃음) 제 안에는 늘 내 작품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만 할 것 같고, 끝까지 가야 할 것 같고…. 그런데도 남편이나 자녀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권유를 해서 결국 개인전을 하게 되었죠. 아마 저를 가만히 두면 저는 전시를 일체 안 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자꾸만 끌어내시는 것 같아요. 제가 이만큼 가면, 또 이만큼 끌어당기며 더 나아가도록 이끄시죠.
재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 재능을 한껏 사용하게 하려고 강권하시나 봅니다.(웃음)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일단 접어 두고 다른 일을 해요. 그러다 얼마 지나고 나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사람도 그래요. 가까이 보면 안 좋아 보이는 사람이 멀리 보면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죠. 이처럼 그림도 여러 각도에서 보며 교정해 가요. 고심이 많으면 쉽게 그려지죠.
언더우드 선교사의 초상화를 그릴 때의 일인데요. 작업을 하는데 마음이 참 슬펐어요. 슬픔이 밀려와 한참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림 속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저를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작업실이 좀 넓다 보니 다른 쪽으로 가도 똑같이 나를 따라오며 부드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위로해 주더군요. ‘위로받지 못하는 나의 슬픔을 언더우드가 알아주는구나’ 싶어 다시 붓을 들 수 있었죠. 그림이 제게 큰 위로가 된 거예요.
한편으로는 배우자이신 이성희 목사님(연동교회 은퇴 목사)으로부터 심적인 지원을 받았다고요.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제 그림을 자랑하고 높여 줘요. 그 마음이 고맙죠. 정작 저 자신은 제 그림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요.(웃음) 그리고 남편이 심적 지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도 해 주었는데요. 제 그림들을 싣기 위해 큰 차량을 마련해 직접 운반해 주기도 해요.
사실 남편과 인연을 이어 주신 분이 저의 시아버님인 故 이상근 목사님(대구제일교회 은퇴 목사)이에요. (이상근 목사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청년 시절 정말 사모하고, 존경했던 분이지요. 건강이 좋지 않으시던 이 목사님을 곁에서 모시며 도와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결혼을 통해 응답을 받았죠.(웃음) 그 덕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곁에서 보살피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어요.
삶을 기도로 채워 가는 만큼 응답도 신실하게 받으셨네요.(웃음) 앞으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어떤 삶을 살기를 소망하시나요? 더불어 2026년의 계획도 말씀해 주세요.
저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은은한 은혜에 젖게 되길 바라요. 제 그림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자존감을 세워 주며 하나님 은혜를 깨닫게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매일 밥을 먹듯이 기도와 말씀으로 나를 세우며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림의 기본은 소묘잖아요. 그래서 올 한 해는 소묘를 좀 더 많이 해 보려고요.
새해를 맞아 오래 망설이던 무언가를 도전해 보려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이든 잘 이겨 낼 수 있는 힘은 ‘습관’에서 나와요. 같은 것을 반복하면 무언가를 얻게 되죠. 그래서 제가 운동을 해요. 사실 저는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웃음) 하지만 운동을 해야 나를 지킬 수 있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날씨를 핑계 삼거나 어떤 이유를 달아서 미루고 회피하면 몸에 배지 않아요. 그래서 무조건 하는 거예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요. 만약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조건’ 시도하세요. 그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저의 그림을 보고 마음에 조금이나마 감동을 느꼈다면 그 속에 기도가 묻어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함께 기도하며 도전하면 하늘이 열리고, 반복의 습관으로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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